홍상수의 영화 생활의 발견 : 사실 너도 똑같잖아
비난의 대상이 비난의 주체가 되고 또 다시 그 비난을 누군가에게 돌려주는 마치 거울을 보고 욕하는 듯한 모습이 이어진다. 그 모습을 보는 우리는 한편으로 저 한심한 경수가 우스우면서도, 그의 행동이 내 마음을 비추는 듯하여 뜨끔하기도 한다. 마치 영화는 내게 '사실 너도 똑같잖아'라고 말하는 듯 하다.
ㅇ 영화명: 생활의 발견 (On the Occasion of Remembering the Turning Gate)
ㅇ 감독: 홍상수(한국)
ㅇ 제작연도:2002년
ㅇ 한줄평: '사실 너도 똑같잖아'
ㅇ 리뷰:
반복과 변주의 돌림노래
홍상우의 많은 영화들이 그렇듯이 생활의 발견 역시 반복과 변주로 구성된다. 내게는 그것이 한 성부가 주제를 시작한 뒤 다른 성부에서 그 주제를 똑같이 모방하면서 화성진행을 맞추어 나가는 대위적인 변주곡 처럼 보인다. 이야기는 공간적인 배경인 춘천과 경주를 중심으로, 여자주인공인 명숙(예지원 분)과 선영(추상미 분)으로 나뉘어 비슷한 상황과 대사가 반복되고 또 변주된다. 어쩌면 그게 홍상수가 말하는 인생론일지도 모르겠다. 인생은 반복되듯이 흘러가고 또 그러면서도 예상치 못한 우연한 변주가 발생한다. 똑같은 영화를 다시 보는 걸 꺼리듯이 그냥 똑같은 내용이 또 반복된다면 우리는 금세 실증을 내겠지만, 전혀 다른 장소와 사람들 사이에서 비슷한 상황이나 대화가 나온다면 우리는 묘한 기시감에 이야기에 빠져들고 만다. 그리고 이는 어쩌면 홍상수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을 보여주기 위한 연극적인 장치일수도 있다. 같은 상황에서도 다르게 행동하고 말을 바꾸는 인간이라는 동물의 본성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너도 똑같잖아
배우인 경수(김상경 분)는 자신의 인지도 때문에 다음 영화 출연이 무산되자 영화사를 찾아 전작의 러닝 개런티를 요구하고, 흥행에 실패한 영화의 러닝 개런티를 찾아가는 그의 심보 어린 행동이 못 마땅한 영화 감독으로 부탁 뼈 있는 충고를 듣는다.
'우리 사람 되기는 힘들어도, 괴물은 되지 말자!'
그리고 친한 형을 만나기 위행 도피 하듯 춘천으로 떠나고, 술집에서 여자를 끼고 진상스럽게 노는 그 친한 형에게 다시 그 비난을 돌려준다. 그러나 그 친한 형이 평소 관심이 있던 명숙을 범하면서 다시 그 비난을 돌려 받는다. 또 유부녀인 선영을 탐하면서 바람을 피는 선영의 남편에게 경고를 하려고 한다.
이처럼 비난의 대상이 비난의 주체가 되고 또 다시 그 비난을 누군가에게 돌려주는 마치 거울을 보고 욕하는 듯한 모습이 이어진다. 그 모습을 보는 우리는 한편으로 저 한심한 경수가 우스우면서도, 그의 행동이 내 마음을 비추는 듯하여 뜨끔하기도 한다. 마치 영화는 내게 '사실 너도 똑같잖아'라고 말하는 듯 하다. 괴물이라는 말은 좀 격하지만 누구나 그 내면에는 일정 부분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고, 욕망에 눈이 멀기도 하는 짐승이 살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회전문
이 영화의 영문 제목은 'On the Occasion of Remembering the Turning Gate'이다. The Turning Gate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청평사의 회전문을 가리킨다. 공주를 사랑한 뱀이 청평사 회전문 앞에서 나갔다 온다는 공주를 끝내 만나지 못하고 폭우가 쏟아지는 바람에 도망쳤다는 설화가 이 영화에 영감을 준 듯 하다. 이는 돈을 가져 나온다며 기다리라고 집으로 들어갔다가 나오는 않는 경수가 폭우를 맞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과 오버랩되며, 경수에게 영화의 영문 제목처럼 회전문 이야기를 기억하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공주를 사랑한 죄로 왕에게 벌을 받아 죽어 뱀으로 환생한 평민 이야기는 경수의 이야기이다. 경수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욕정에 눈이 멀어 친한 형의 여자, 유부녀까지 범하며 짐승이 되어간다.
회전문이라는 이미지, 그리고 돌고도는 뼈 있는 조언의 전달, 비슷한 듯 다르게 반복되는 춘천과 경주에서의 경수의 모습, 스님이 되어 떠돌거라는 경수의 사주는 불교의 윤회 사상을 떠오르게 한다. 경수는 번뇌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에서 같은 죄를 반복하는 불상한 중생처럼 보인다. 어쩌면 청평사 회전문 설화 속의 뱀이 경수로 환생한 것일지도 모른다.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08253
춘천과 경주
홍상수 영화의 장점 중 하나는 공간적인 배경을 잘 활용한다는 것이다. 많은 한국 영화에서 공간적인 배경은 그냥 부수적인 무대장치가 되지만 홍상수 영화에서 공간적인 배경은 한 번쯤 가보고 싶은 여행지가 된다. 따라서 해당 여행지에 가기 전이나 여행지에 도착해서 그 여행지가 배경이 되는 홍상수의 영화를 감상하고 영화에 나온 곳을 찾아보는 건 그의 영화를 즐실 수 있는 또 한 가지의 좋은 방법이다. '하하하'는 통영을 잘 활용하고 있다면, 이 영화는 춘천과 경주라는 공간적인 배경이 눈에 뛴다. 많은 사람들에게 수학여행, MT, 주말여행, 배낭여행, 휴가지로 기억되는 이 두 곳의 식당, 시장, 명소 등이 영화 중간중간 등장한다. 특히 개발이 많지 않은 지방이나 외곽의 경우, 20년 전 가게가 그대로 남아있는 경우도 있어 상호만 보고 지도에 검색해봐도 그 가게를 찾을 수 있는 경우가 있어 꽤 신기했다. 이런 곳을 볼 때면 단지 영화 속에서만 보았을 뿐인데도 가보지 않은 곳에 대한 아련함 같은게 묻어나서 좋다.
춘천 나그랑 호프
춘천 청평사
춘천 세종호텔
경주 콩고드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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